p.74
자기의 말또는 동작이 어느 정도까지 남에게 표명되는가를 정확히 계산하기는 사실 누구에게나 어렵다. 자기의 영향력을 남에게 과시하기를 두려워하거나, 또 상대방인 남이 자기의 평생의 추억을 필연적으로 전개시키고 있는 마음속의 범위를 너무 넓게 보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말이나 태도의 부수적인 부분들은 거의 상대방 의식에 뚫고 들어가지 않을 것이고, 그러므로 기억에 남지 않을 것이라고 상상한다.
p.79
또 상기해 보시라. 배신만을 당하면서도, 애인의 애정을 굳게 믿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또는 다음과 같은사람들을, 곧 아내를 여의고 나서 만사에 위안을 받지 못하는 남편이 아직도 사랑하는 죽은 아내에 대해 생각하는 순간, 금세 어떤 불가해한 사후의 생존이라는 것에 희망을 걸면서도, 반대로 자기의 죄과를 사후에 갚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자 도리어 완전한 허무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온갖 사람들을, 또는 그날 그날의 여행에서는 권태밖에 느끼지 않았지만 전체를 통해 생각할 때 그 아름다움에 감격하고 마는 여행자를 생각해 보시라. 또한 묻고 싶다. 우리가 품는 여러 사상은 우리의 정신 속에서 공동생활을 하고 있으므로 서로 남의 힘을 빌리지 않고는 성립될 수 없는 것인데, 우리를 가장 행복하게 해주는 사상 중에서, 처음에는 글자 그대로 기생충처럼 자기 아닌 이웃의 사상에 대하여, 자기에게 부족한 근본적인 힘을 구하지 않은 사상이 과연 하나라도 있는가를.
어머니는, 이제 아버지가 나를 위하여 '직업'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것을 그다지 달갑게 여기지 않는 성싶었다. 생각해 보건대, 일상생활의 규율이 내 신경질을 교정하는 걸 무엇보다 바락도 있던 어머니의 마음에 섭섭한 느낌을 주었던 것은 외교관을 단념한 나를 보는 것보다 문학에 전심하는 나를 보는 것이었다. "내버려 두구려"하고 아버지는 소리쳤다. "뭐니뭐니 해도 자기가 하는 일에 기쁨을 가져야 하는 거요. 그런데 저 애는 이미 어린애가 아니지. 이제는 자기가 뭘 좋아하는 지 알고 있소. 아마 변하지 않을걸. 또 생활에서 자기를 행복하게 해주는 게 뭔지 알아차릴 수 있거든." 이러한 말이 내게 준 자유 덕분에, 삶에서 행복하게 된다. 또는 못 된다는 문제에 앞서, 어쨌든 그 날 밤 아버지의 말씀은 내게 심한 괴로움을 맛보게 했다. 아버지의 뜻밖의 다정스러운 마음씨가 불쑥 나타나곤 할 때 .... 오로지 아버지의 마음을 언짢게 해 대르니는 걸 두려워 하였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쓰고 싶어하는 욕망이, 과연 그 때문에 아버지로 하여금 그처럼 지대한 호의를 베풀게 할 만큼 중요한 것일까 자문했다. 더욱이 아버지는, 앞으로 변하지 않을 내 취미에 대해, 나의 삶을 행복하게 해주기 위한 것에 대해 말하면서 내 망므에 두 가지 무서운 의혹을 불어넣었다. 첫째는 나의 삶은 이미 시작된 것이 아닐까, 뿐만 아니라, 뒤이어 오려고 하는 게 앞서 온 것과 별로 다른 게 아니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둘째의 의혹도 실은 첫째 의혹의 다른 형태에 불과한 것으로서, 곧 자기는 시간의 바깥에 놓여있는 게 아니고, 소설 속의 인문들과 똑같이 시간의 법칙에 따르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그러한 소설의 인문들은 내가 콩브레엥서, 차양 달린 버들의자에 깊숙이 앉아 그들의 생애를 읽었을 때, 역시 이런 이유 때문에 나를 이와 같은 비애에 잠기게 했다. 이론적으로 사람들은 지구가 회전한다는 사실을 안다. 그러나 현실로는 그 사실을 보지 못한다. 인간이 걷는 대지는 움직이지 앟ㄴ는 것 같고, 인간은 정지한 채 살아간다. 일생에서 시간의 경우도 그와 같다. 따라서 그 둔주를 감각시키려고 소설가는 하는 수 없이 시계바늘의 움직임을 마구 빨리 하여, 독자로 하여금 2초 동안에 10,20,30년을 뛰어넘게 하지 않을 수 없다. 어느 페이지 첫 머리에서 우리는 희망에 찬 한 여이과 이별한다. 다음 페이지 끝에서, 우리가 다시 만나는 그 여인은 여든 살이 되어 있고, 양로원의 안뜰에서 간신히 일과의 산책을 마치고, 자기에게 건네는 말에 거의 대꾸하지 않으며, 과거를 망각하고 있다. 나에 대해 '저 애는 이미 어린애가 아니지. 저 애의 취미는 변치 않을걸, 운운'하고 말함으로써 아버지는 시간의 흐름 속에 나 자신이 있는 것을 갑자기 깨닫게 하여, 우둔하게 되어버린다. 양로원의 수용자 정도는 아직 아니더라도 작가가 무엇보다도 잔인한 무관심한 어조로 소설의 결말에서 우리에게 '그는 점점 더 시골에서 나오지 않게 되었다. 그는 결국 그곳에 정착하고 말았다. 운운' 하고 이야기하는 소설의 주인공 신세 같은 비애를 내 마음에 안겨 주었다.
p.82
진정으ㅗㄹ 말하는 사람은, 짓궂은 사람이 남을 업신여기는 데서 맛보는 것과 똑같은 정도의 기쁨을 가지고 남을 과대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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