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
그 곳에서만 빛난다(2014)
어째 행복보다 불행을 기록할 가치가 있다고 느끼는 건지.. 공허함이 새벽을 새까맣게 채우고 날이 밝은 것을 본 후에 밀려오는 허탈함을 느낄 때 글을 쓰고 싶어진다.
오랜만에 누군가 나한테 자기가 중요하게 보았다는 영화를 추천해줘서 주말에 보게 되었다. 영화는 사고로 인한 트라우마로 일터에서 벗어난 남자 주인공 타츠오가 산보와 파칭코만을 반복하는 나날들 속에서 우연히 모르는 남자에게 라이터를 빌려주면서 시작된다.
1. 폭발 사고 속 트라우마와 서서히 망가져 가는 일상
폭발과 같은 비가역적인 사건을 겪은 사람과 매일 매일 죽고 싶고 죽이고 싶은 일상에서의 고통 속에서 잠식당해가는 사람 중 어떤 사람이 더 강인할까? 그런 의문이 들었으나 이내 바보같은 질문이란 결론에 이르렀다. 누가 더 강한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둘은 눈 맞는다는 점에서. 어찌되었든 죽음의 공포와 유혹 속에서 리비도는 본능적으로 살려고 발버둥친다. 타나토스가 에로스를 불러오는 것이다.
타츠오는 마치 전쟁 속에서 혼자만 살아남아 돌아 온 병사처럼 PTSD에 시달리며 우울증 환자처럼 살아간다. 의사는 아니지만 자는 모양만 봐도 판단할 수 있다. 예컨대, 침대에서 자고 있지 않거나 침대에서 반듯이 혹은 편안하게 자고 있지 않고 쭈구려서 자는 모습만 봐도 그렇다.
한편 뇌경색으로 앓아 누워 똥오줌도 못 가려 비닐 시트에 하루 종일 누워 지내면서도 성욕 만큼을 해결해야 해서 금수처럼 울부짖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 속에서 생기나 삶의 의지라고는 없어 보이는 어머니, 그리고 그런 현실을 애써 외면하기 위해서라도 지나치게 가볍고 밝게 살아가는 남동생, 그 빌어먹을 모두를 먹여 살리려는 치나츠는 타츠오에게 다시 살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여자다.
2. 개같은 가족과 돌보고 싶은 고양이
얼마 전에 트위터에서 500일 동안 함께 해줘서 고맙고 앞으로도 영원히 나와 함께 해주길 바란다고 자신이 돌보는 고양이의 사진을 올린 사람을 보았다. 치나츠가 개같은 가족을 차마 버리지 못 하고 물심양면으로 돌보면서 살아가는 것처럼 사람들은 가족들을 함부로 버리거나 갈아치우지는 않는 것 같다. 뭐 가끔 키우던 개나 고양이를 버리는 인간들도 있긴 하지만 통상적으로 인간이 인간을 버리는 일이 더 쉬워보인다.
영화 속에서 나카지마는 자신이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한심하고 가엾은 치나츠도 언제든 자기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여자라고 여긴다. 그녀가 이제 그만 만나자고 그를 버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나카지마는 버림 받는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어서 치나츠에게 다른 남자가 있어도 괜찮으니 자기를 만나달라고 애원하고, 통하지 않으니 때려도 보고, 협박하고 겁박한다. 나카지마의 방식도 어떤 면에서는 사랑일 것이다.
내 것이라고 다 소중한 것도 아니고, 한시적으로 내것처럼 느껴지더라도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소유로 규정지을 수 없다. 그러니까 변태성욕자들이 갖은 플레이를 하면서 찰나라도 누군가를 갖고 있다는 느낌을 원하거나 혹은 완전히 소유당하고 있다는 충만함에 사로잡히고 싶어하는 거다. 고양이와 평생 함께 하고 싶다는 이야기는 감동적으로 느끼면서도 누군가, 인간이 그런 말을 내게 한다면 갑자기 숨이 막혀 온다. 나도 누군가에게 숨막히는 사랑을 준 적은 있나?
3. 그래도 소유하고 살래, 결혼으로 가족으로
이 영화는 살고 싶어하지 않았던 두 사람이 살아가는 원동력을 회복하는 부활 이야기이도 하지만, 가족없이 혼자서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한 타츠오가 치나츠에게 청혼을 하고 가족을 꾸릴 계획을 세우는 결심을 하는 가족계획 이야기이기도 하다. 어떤 연구에 따르면 질투심의 정도가 심한 커플일 수록 결혼할 확률이 높다고 한다. 인류 사회는 타인을 그럴싸하게 소유할 수 있는 제도를 일부일처제를 통해 보장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제도적으로 보장해준다는 것의 의의는 결국 자연스럽게 유지되기 어려움을 의미하는 것인데, 소유와 통제를 피하고 싶어하는 나로써는 그런 관점에서 아주 질투심이 심한 애인을 만나지 않는 이상 결혼하기 어렵다는 결론으로 귀결되는데, 애시당초 그런 찌질한 남자랑은 만나기가 어렵다.
엄마랑 영화를 함께 보고 나서 쟤네 그래서 결혼했을까? 라고 엄마가 물어봤다. 뭐 모르죠. 라고 대답했고 둘 다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결혼한다고 가족이 생긴다고 행복한 건 아니잖아.
나만의 사랑과 구원의 의미를 도대체 몇 살이면 찾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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