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맛이 없어 식사를 미루다가 약을 먹으려고 늦은 밤 억지로 끼니를 챙겼다. 결국 반 이상이 남아서 버리려고 투명한 비닐봉지에 남은 밥을 우겨넣으니 몇 해 전 크리스마스 이브에 배식봉사를 했던 기억이 났다.

어떤 할머니가 남은 밥을 비닐봉지에 담아달라고 하셨는데 다른 데에 담아드리겠다고 했더니 한사코 비닐봉지를 고집하셨었다. 이유를 알고보니 비닐봉지에 담아가기를 고집한 것은 먹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갓 지은 밥의 온기를 품고 추위를 버티기 위함이었다.

그 날 매해 연말 전에는 꼭 이웃을 돌보는 시간을 갖으리라 다짐해놓고는 공부한답시고 저밖에 모르고 살았었다.
그 때는 젊었는지 멍청했는지 니트 하나만 입고 한겨울에 냉수로 설거지하고는 크리스마스 다음 날까지도 감기로 앓아누웠었는데 마음이 떠도는 것은 그 때나 지금이나 똑같은 걸 보면 성장세가 형편없다. 아 뭐 그래도 그 땐 함께 밥 먹는 행위가 나한테는 특별한 의미였는데-그러니까 아무랑 밥을 먹지는 않았는데 누가 그걸 사든-지금은 별 생각이 없다. 이렇게 점점 누추한 어른이 되어가는 건가.

그나저나 그 할머니는 잘 계시나 에혀
이걸 읽는 당신도 밥은 잘 먹고 다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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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가면 공허하고
돌아보면 환멸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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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러를 들으며 빵을 태우고
치즈가 빠지고 커피는 넘어가고
돌보지 못한 것들을 돌아보고
여전히 빈둥대는 게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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