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한테 차이고는 이제부터 일 뿐이다 싶었지만 갑자기 시간이 많아진 프로젝트에 투입되어 괴로운 여가시간을 보내게 되자 나는 여가 유틸을 높일 요량으로 친구도 만나고 이도 만나보고 저도 만나보았다. 마치 애인한테 구속된 삶 속에서 억압된 싱글의 자유라도 누려보겠다는 사람마냥.
쉽게 오면 쉽게 가는 사이에서 주고 받는 건 뭘까? 마음? 시간? 동정? 체액이나 타액? 그렇다면 붙잡지 않는 미덕이 있는 사이는 되려 건조하다기보다는 끈적함에 더 가까울 거다.
누구든 만날 수 있다는 결론에 다다르자 누구도 만나기 싫어졌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니라는 점은 좋은데 슬프기도. 나는 알고 있다. 내가 배타적이고 로맨틱한 관계를 지향한다는 것을. 하지만 외면하고 싶은 건 즐기고 싶어서가 아니라 겁이 나서이다.

술 먹고 일하고 놀고
술 먹고 일하고 놀고
몸살 나서 앓아 눕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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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때가 실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때라는 말을 듣고 아무나 사랑해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사람은 아무나 만날 수 있을 것 같을 때 누구도 만날 수가 없다. 복수는 곧 분산이자 집중의 정반대니까.

여럿이란 내게 어렵다. 자신은 폴리가미신봉자도 아니고 욕정에 눈이 멀어 여러 신체를 가질 수 있는 몸도 아니고 무엇보다 마음의 공간이 너무 협소해서 새로 누구를 들일 여유도 없다.

결국 중요한 것은 순수한 마음 단 하나를 바라는 것일진대 그 대상을 찾는 과정이 그리 재밌거나 즐겁지만은 않다. 나는 그걸 너무도 잘 알고 있어서 초여름을 고독 속에서 보내왔지만 몇 번의 지겨운 장마가 계절과 나의 기운을 다 앗아갔듯 애정의 엔트로피는 요연해보인다.

가을이 오면 어떤 결실이 있을까? 거둘 게 없어 보이는 올해 농사는 다 망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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